(주)구봉·도금·정공 김명석 대표
글로벌 No.1 기업으로 비상한다

현광순 기자 | 기사입력 2011/09/29 [14:28]

(주)구봉·도금·정공 김명석 대표
글로벌 No.1 기업으로 비상한다

현광순 기자 | 입력 : 2011/09/29 [14:28]
▲ (주)구봉·도금·정공 김명석 대표     ©경제인
 
“전국 100대 기업 중 대구에 본사를 둔 기업은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광역시인 대구로선 굴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대구의 경제상황을 묻는 질문에 한 대구시민이 한숨을 토하며 내뱉은 말로, 단적으로 대구의 현주소를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대구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실을 기하며 글로벌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는 역량 있는 우수 중소기업들이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국가 기간산업인 제철·제지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대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주)구봉·도금·정공(대표이사 김명석)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9월 20일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주)구봉·도금·정공 본사에서 김명석 대표를 만나 (주)구봉·도금·정공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미래 가치와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 성실과 노력으로 CEO가 되다

(주)구봉·도금·정공은 1976년 이후 지난 35년간 장인정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산업기계(제철·제지·필름) 롤러 제작·가공·도금 및 연마 자동차 부품, 유압, 실린더, 로드전문업체로 성장, 발전해왔다.

특히 그동안 외국기술에 의존하던 제철산업용 롤의 도금기술을 독자 개발하는데 성공, 국내 도금분야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독일, 유럽 등 선진국 못지않은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게 됐고, 해외 의존도를 탈피함으로써 수입 대체 효과는 물론, 오히려 해외진출의 물꼬를 트게 됐다. 더불어 도금의 수요분야인 제철 및 제지산업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싣게 됐다.

현재 (주)구봉·도금·정공은 품질 경영과 연구 개발로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생산, 최상의 품질 보증을 위해 전문화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품질과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주)구봉·도금·정공의 역사는 김명석 대표가 걸어온 인생행로와 맥을 같이 한다. (주)구봉·도금·정공 자체가 곧 김 대표 인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학업을 포기할 정도로 어려운 집안환경 탓에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실제로 중학교 시절 새벽과 저녁 하루 두 번씩 신문을 돌렸고, 중학교 졸업 후에는 진학을 포기한 채 곧바로 열여섯의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다.

그가 취업한 곳은 구봉맥기라는 회사였다.(우리말 도금을 일본말로 맥기라 한다) 그는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손이 부르트도록 성실히 일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어른 못지않게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런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바로 구봉맥기의 사장이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당시 구봉맥기 사장은 어린 김 대표의 뛰어난 자질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사장님이 저를 앉혀놓고, 공부를 하라더군요. 때를 놓치면 안 된다며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못 다한 공부에 욕심이 있었기에 사장님의 도움을 감사히 받았습니다.”

그렇게 김 대표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주경야독의 시간을 이어갔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고된 시간이었지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역량을 키워나갔다. 군대에 다녀온 뒤에 재입사 해 도금분야에 대한 자질과 능력을 배양했다.

그리고 1974년 김 대표를 높이 평가한 구봉맥기 사장의 제의에 의해 몸담았던 구봉맥기를 인수하게 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하고도 아홉에 불과했다. 오로지 성실과 노력으로 가난했던 16세 소년이 불과 13여년 만에 CEO의 자리에 오른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향후 대구경제의 중심축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소기업으로 자리매김 할 (주)구봉·도금·정공의 탄생이었다.
 
# 토대를 다지고 기틀을 다잡다
 
김 대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처럼 1976년 구봉도금공업사로 이름을 바꾸고 회사를 이른바 ‘김명석 체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를 회사의 기치로 내걸었다. 물론 초창기인 탓에 김 대표 혼자 영업을 뛰고, 또 혼자 일하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매일이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서만큼은 어떠한 하자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회사 운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다면 모를까 일단 시작했으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성공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초창기 김 대표는 구봉이 도금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와 기반을 다지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기술력 축적에 힘썼다. 기술력 축적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겠단 각오였다. 실제로 외국의 선진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한 기업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한 도금회사에서 허드렛일을 감수하며 기술을 배운 적이 있는데, 이는 지금도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본에서 (주)구봉·도금·정공 기술을 배우러 방문하는 등 상황이 역전되었다.

기술력과 함께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김 대표는 서서히 사업영역의 폭을 넓혀나갔다. 자전거 핸들과 섬유기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싸이징 롤 나이프 도금과 섬유기계 바디 도금에 주력하는 한편, 엔진 실린더 도금, 크랭크 재생 도금 등의 경질크롬 도금으로 확장해 나갔다.

그러면서 구봉의 이름은 점차 업계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 실력과 능력을 인정하는 관련 기업들이 늘어갔다.
 
# 업계 No.1 기업으로 우뚝 서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구봉은 일대 전기를 맞게 된다. 국내 제철산업의 메카였던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롤 도금 입찰을 따내며 일약 도금분야 최고의 기업으로 수직상승한 것이다.

구봉의 포스코 롤 도금 수주는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대사건이었지만, 당초 무명의 중소기업인 구봉의 포스코 롤 도금 입찰에 주목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비웃음을 보내기 일쑤였다. 제철산업에 있어 롤 도금은 핵심 사안 중 하나였고,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제철용 룰 도금을 소화할 업체가 없다는 게 정설이었고, 외국기술에 위존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구봉이 입찰에 성공하자 포스코는 물론 업계가 발칵 뒤집혔음은 불문가지다.

당시 입찰에 관여했던 포스코 한 관계자는 “공장 실사와 공정 감사에 이어 테스트 물량을 받았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와 모두가 깜짝 놀랐다”면서 “구봉의 품질이 일본 업체가 도금한 것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고, 단가도 30%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포스코의 입장에서 기존의 외국기업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고, 비용 또한 1/3 수준인 구봉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이를 계기로 구봉과 포스코는 상호 든든한 파트너로서 공동의 길을 걷게 됐고, 지금도 두 회사의 상생관계는 굳건히 이어져 가고 있다.

한편, 구봉이 포스코의 롤 도금을 수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 대표의 철저한 계산과 준비가 있었다.

김 대표는 “산업의 흐름과 정부정책이 1차 산업에서 중화학산업으로 변화될 것이고, 더불어 롤 도금 물량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며 “특히 제철용 롤 도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포스코 입찰이 있기 몇 해 전부터 제철용 롤 도금을 소화하기 위한 설비를 점진적으로 갖춰가면서 관련 기술 습득에 힘을 쏟았다. 특히 ∅3,000을 도금할 수 있는 11m 크기(100,000리터)의 탱크를 설치해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도금라인을 구축했다.

그의 예상처럼 국내산업의 중심추는 중화학공업으로 이동했고, 구봉은 포스코 롤 도금 수주를 계기로 엄청난 실적을 쌓으며 성장의 성장을 거듭했고, 마침내 이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 항상 변화하고 도전하라
 
제철용 롤 도금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한 구봉은 승승장구했다. 제철분야에서 연간 1만 개 정도의 안정적인 물량이 갖춰지면서 매출은 해마다 상승곡선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1995년 (주)구봉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고인 물은 결국 썩고 맙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흐르는 물처럼 항상 변화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는 제철용 롤 도금 시장에서의 자신감을 기반으로 제지용 롤 도금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품질과 단가에서 전 세계 어느 회사보다 뛰어났기에 한솔제지, 아세아제지, 고려제지, 동일제지, 무림SP 등 내로라하는 제지업체들과 속속 계약을 체결, 제지용 롤 도금 물량을 독점하다시피하며 이 분야 No.1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김 대표는 구봉의 미래를 위해 특히 R&D투자에 힘을 쏟았다. 실제 그는 독일로 건너가 연마기를 비롯한 설비에 1년치 매출을 뛰어넘는 자금을 과감히 투자했다.

또한 IMF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인 2000년 포스코의 롤 도금을 위해 부지를 매입하고 설비를 투자했다. 2004년에는 초대형 연마 및 도금설비를 구축했고, 이듬해인 2005년에는 특장차용 실린더 로드 생산을 통한 수입대체를 위해 초장축 실린더 설비를 갖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브레이크 부품인 캘리퍼피스톤을 소재부터 가공까지 일괄 개발하는데 3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김 대표는 “기업의 힘은 첨단기술과 설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이러한 R&D투자 덕분에 구봉은 90년대 말 불어 닥친 IMF 한파 속에서도 큰 피해 없이 헤쳐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R&D투자는 독자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기술이 워크 롤 크롬도금기술이다. 구봉은 이 기술을 통해 철판이 햇빛에 반사되면 표면이 울룩불룩해 보이는 현상인 ‘드롭현상’을 해결했고, 이에 힘입어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혼다에 자동차용 외판재 수출이 가능할 수 있었다.
 
# 글로벌 기업으로의 비상
 
구봉은 이미 오래전부터 단순히 도금만 하는 임가공업체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현재 연마와 도금 가공까지 아우르는 복합기술전문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9년 11월 포스코 멕시코 CGL공장(알타미라) 크롬도금설비에 이어 올해 포스코 인도공장의 표면처리 파트 설비를 턴키방식으로 수주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포스코 인도공장도 구봉의 기술을 인정받아 수주하였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구봉의 복합기술이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구봉은 자동차 제동장치 부품분야에 있어서도 지난 20년간 꾸준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병행하며 기술력을 키워왔다. 이에 힘입어 GM대우의 제동장치 브레이크 피스톤을 전량 생산하고 있고, 동양기전 유압 실린더 생산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구봉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꾀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밑 그림을 그려놓고 준비해 온 목표로, 과감한 R&D투자와 독자 기술개발에 매진해 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리고 비상을 위한 첫걸음으로 본사 이전을 준비 중이다. 경북 고령의 다산농공단지에 26,400㎡(8,000평) 규모의 부지를 마련, 3군데로 분산돼 있는 구봉정공, (주)구봉, (주)구봉제2공장을 한 울타리 안에 합친다는 계획으로 내년에 입주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연구인력 확충과 시설투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등 끊임없이 미래를 위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대표는 지난 2009년 모범중소기업 대통령표창을 받았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대구지역 경영인들의 리더 격이다. 당시 수상자 중 대구지역뿐 아니라 지방기업인으로는 그가 유일했다.
 
또한, 라이온스클럽, 방위협의회등 단체에 가입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힘쓰는 한편, 대구지역 기업인의 고충과 속앓이에 귀를 기울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대표는 “대구시가 올 초부터 토종 기업 역차별을 방지하고 육성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 오고 있다”면서 “대구시는 지역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정책과 조례를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지역기업의 목소리를 수렴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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