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 매나테크코리아 PPD

이젠 글로벌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

박진호 기자 | 입력 : 2012/06/21 [16:07]
성공에 대한 청사진을 통해 글로벌 리더의 길 제시

최근 우리사회에는 ‘글로벌’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수많은 기업들은 글로벌화를 목표로  R&D 투자에 힘쓰고 있고, 각 개인에게도 글로벌 마인드가 강조되고 있다.
 
글로벌 마인드 육성을 모토로 하는 사설학원도 등장했다. 그러나 글로벌화의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열정과 노력에 기인할 수밖에 없는데, 이만으로는 글로벌화가 결코 만만치 않은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김수경 매나테크코리아 PPD는 글로벌화를 꿈꾸는 우리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다. 매나테크 사업에 대한 열정과 성공 청사진만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해외 각지에 성공 시스템을 전파하며, 진정한 글로벌 리더의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말이다.

이에 본지는 김수경 PPD를 만나 현재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세와 마인드, 그리고 그녀가 완성해가고 있는 성공 청사진에 대해 들어보았다.
 
33살 젊은 나이에 성공을 맛보다
서울 역삼동 매나테크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김수경 사장은 역동적이기 보다는 지적인 분위기의 인물이었다. 단아한 외모에서 풍기는 기운은 마주하는 이를 기분 좋게 하는 향기로움이 묻어났다. 조곤조곤하면서도 청명한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 묘한 마력이 배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수경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아직 성공을 말하기엔 많이 부족한데, 제가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반가움이 한껏 묻어나는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를 건네며, 먼저 겸양의 말을 내비쳤다. 이미 국내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리더 중의 리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순간 그녀의 겸양이 ‘형식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겸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결코 거짓이 없는 순수함 그 자체였고, 흔들림도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리더로서의 진면목을 보게 된 순간이었다.

강렬했던 첫인상을 뒤로하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그녀가 지금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미국 유학시절 네트워크를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제 나이는 27살에 불과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불과 6년만인 33살에 성공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김 사장은 귀국 후에도 미국에서 인연을 맺은 네트워크 회사의 한국지사를 통해 네트워크 사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승승장구하며 톱클래스에 올랐고, 더불어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녀의 성장곡선은 점차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 안에서는 번뇌가 들끓기 시작했다.

“모든 게 완벽하다 생각했습니다. 좋은 회사, 우수한 제품, 탁월한 시스템 등 무엇 하나 나무랄 게 없었죠. 하지만 채워주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래에 대한 성공 청사진, 즉 구체적인 꿈의 플랜이었습니다.”

성공 청사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그녀는 거대한 성공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토대로 사업자들에게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한다면, 한순간의 좌절이나 침체기가 찾아와도 다시 일어서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다음 단계의 목표가 곧바로 설정되기에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윈윈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이에 그녀는 회사 내 상위 직급자들과 만나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이에 대해 상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하느냐”, “어려운길 걸어왔으니 이제 편안히 누려라”, 등의 반응 뿐이었다.

“잘못된 청사진을 수정하려는 의지가 꺽이자 점차 사업에 대한 열정과 의욕도 식어버리더군요. 그리고 매달 받는 수입도 당당하게 벌은 것이지만 내 것 같지 않아 죄스럽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업을 포기할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새로운 운명과의 만남, 그리고 희망

“제 인생의 첫 사랑 같은 사업을 결국 그만두고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려할 때 였습니다. 그렇게 결정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금의 제 스폰서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첫 사업을 하던 중 사업 상 고민이 많을 때 .우연히 미국에서 매나테크라는 회사에 관해 듣게 되었고, 이후 그저 흘러가는 말로 알고 지내던 지금의 스폰서님께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을 기억하시고 함께 매나테크에 관해 알아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12년 여간의 열정을 다하였던 사업을 접었던 터라 김 사장은 스폰서의 제안이 마뜩찮았지만, 전화주신 분의 마음에 답례하듯 매나테크 사업설명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네트워크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성공 청사진이 있어야 되는데, 현시대의 네트워크 회사들은 이러한 마인드가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김 사장에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성공 청사진의 가능성을 바로 매나테크에서 찾은 것이다.

김 사장은 우선 매나테크가 굉장히 건실한 회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지금까지 밟아온 길이 투명했기에, 앞으로 걷게 될 향후 50년의 비전 또한 누구나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심혈을 기울여 누구나에게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고, 세계 발명특허들로 사업가들을 보호하고 이를 직접 생산하는 이른바 네트워크의 성공 요소 이상의 것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큰 점수를 줬다.

“매나테크 사업에 그동안 혼자 고민해 왔던 성공 청사진을 얹으면 꿈에 그리던 진정한 네트워크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뒤를 이은 누군가가 이를 완성시킬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매나테크 사업에 확신을 갖게 된 김 사장은 곧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스템에 성공 청사진을 접목시키고자 온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처럼 그녀의 앞에 놓인 길은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일례로 당시 매나테크의 상황은 매우 열악했는데, 대강의실이라고 부르는 곳이 40여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처음에는 길거리 컨택부터 시작했습니다. 지하철 타고 다니며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사업을 설명했죠. 그렇게 두 달여가 되니 나름의 리스트가 만들어지더군요. 이를 토대로 사업을 키워나갔습니다.”

흔히 열정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정작 김 사장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이미 성공을 거머쥐었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확률은 낮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김 사장의 이러한 노력들은 가히 존경받을 만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업계에서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네트워크 회사에서 탑클래스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 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선 회사를 옮길 경우 자신의 라인을 통째로 옮겨가는 것이 관례인 탓에, 적어도 수백명의 파트너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의종군의 자세로 매나테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비롯된 파트너와 인맥, 연락처, 자동차 등 모든 것들을 내려놨습니다. 지금껏 저를 키워준 회사에 대한 도의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만둔 것도 미안한데, 사업자를 빼내와 손해를 끼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잖아요.”

전 세계 2,500만명 회원 만들 터

김 사장이 매나테크 사업을 통해 제시하는 성공 청사진은 바로 글로벌 사업이다. 이미 국내 네트워크 시장은 레드오션화 된 상태여서 치열한 경쟁만큼 기대효과가 크지 않기에, 해외 진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글로벌 사업은 신규 시장 선점 측면에서 대한민국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기에, 거시적으로 국내 사업가들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지상과제라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네트워크의 본산인 미국은 세계 각국에 진출한 네트워크 회사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가 미국에서 시작된 탓에 상위 직급 대부분을 미국인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지금부터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나라도 가능합니다. 한국인의 근면?성실함과 열정은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은 매나테크가 외국계 기업이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고위직급에 오르면 한국기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회사는 하나의 그릇일 뿐,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명분이 좋더라도 기본이 없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녀는 사업 초기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특히 자신만의 성공 청사진을 만들어 구체적인 실천과제와 목표를 설정했다.

우선 40살에 은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서 말하는 은퇴는 아예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경제적 여유로움을 구축해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는 수준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불과 몇 년 만에 이루기엔 너무 큰 계획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긴 했는데, 여의치 않아 40살이 가까워올수록 초조해지더군요. 그래서 살짝 꾀를 냈습니다. 외국계 회사니 만으로 나이를 계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1년의 유예기간을 벌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년 동안 정말 죽기 살기로 일에 매진했습니다. 서울, 광주,대구,대전,부산을 동선으로 삼아 매주 3일은 지방에서 보냈고,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심야버스로 이동하며 잠을 잤습니다. 그리곤 아침에 찜질방에서 씻고, 화장을 했죠.”

그 결과, 김 사장은 2006년 12월 당초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목표한 만큼 수익을 올렸고, 직급도 실버프레지덴셜을 달성하며 은퇴해도 좋을 만한 위치에 올랐다.

자신의 성공 청사진 중 첫 번째 플랜을 완성한 김 사장은 곧바로 다음 플랜을 추진했다. 바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었다. 이에 그녀는 2007년 5월 미국을 첫 진출국으로 삼아 LA와 시카고, 버지니아, 뉴욕에 매나테크 사업의 씨를 뿌렸다.

물론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따랐다. 하지만 그녀는 소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청사진 대로 하나씩 추진해 나갔다. 그러자 점차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300~350% 성장세로 폭발했다. 이에 힘입어 캐나다와 호주에도 진출했는데, 이곳에서도 350%가 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후 그녀는 해외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지금은 전 세계 1,000여개 도시에, 18만명의 멤버십을 두고 있다. 향후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에 진출할 계획이다.

“제 최종 미션은 전 세계에 2,500만명의 회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트위터 아이디도 ‘글로벌 마마 2500’입니다.”

한편, 김 사장을 비롯한 파트너들은 ‘글로벌 매나파워 그룹’이란 이름 아래 한마음 한뜻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특별히 매나테크 창립자이신 Sam Caster(샘 캐스터)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아 전 세계 영양실조 현실을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해마다 5세미만의 굶어죽는 아이들의 숫자는 500만명을 넘습니다. 저희는 한사람의 식단을 바꾸게 되면 한 아이를 살리는 Give For Real 이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50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면 자연히 500만명의 아이들을 살리게 되는 것이죠. 분명히 저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일이 곧 내 사업이기도 하다는데 자부심이 대단한 그룹원들 또한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문화에도 관심을 갖고 연 3회째 자선음악회를 통해 비영리단체인 매나릴리프를 통해 이익금을 전해오는 일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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