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째 공석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새 회장으로 류진(柳津·65) 풍산 회장이 추대됐다. 전경련은 임시총회에서 기관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로 바꾸고, 새 회장에 류진 풍산 회장을 추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험과 지식, 네트워크가 탁월해 적임자라는 평가다. 류 회장은 새로운 전경련, 즉 한경협의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임기는 2년이다.
풍산그룹의 역사 1968년 10월 류찬우 창업주가 무역업으로 벌어들인 자본금으로 풍산금속공업을 세운 게 기원이다. 풍산그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자손이 창업한 기업이라는 것이 대내외적인 자랑거리다. 초기에는 동판이나 동파이프 같은 신동제품류를 만들면서 1970년 7월 경제공업화 5대 핵심업체로 지정돼 동전을 한국조폐공사에 납품하거나 수출했고, 1973년 3월 방위산업체로 지정돼 총알 같은 탄약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국내 굴지의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1978년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으로 본사를 이전한 후 9년 뒤인 1987년 노동자 대투쟁 후 1989년 초 안강공장 총파업으로 248억원의 적자를 내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해 3월 풍산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이미지 쇄신을 시작했으며, 1991년에 풍산정밀을 세워 반도체 부품사업을 개시했고 1992년 5월 풍산기계를 설립해 기계산업에 진출했다. 1997년 미국 머스코 사와 합작해 머스코풍산을 세우면서 조금씩 사업다각화의 길에 들어섰다. 2008년 7월 기존 풍산이 풍산홀딩스로 출범되면서 지주회사 총괄구조가 됐고, 2011년 서울 충정로3가에 신사옥 풍산빌딩을 준공해 자체 사옥을 처음 가졌다.
'동전과 총알의 왕국' 풍산이 만드는 동전의 재료인 소전은 세계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한국 대표 수출 상품이다. 1970년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 생산 업체로 지정돼 국내 주화용 소전을 전량 납품한 풍산은 1973년 대만에 소전을 수출하면서 세계 소전 시장의 강자로 자리하게 됐다. 1997년 유럽의 경쟁업체들을 누르고 유럽연합(EU) 각국에 유로화용 소전을 공급하는 등 현재 해외 60여개국 35억 인구가 풍산이 만든 소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풍산을 있게 한 것은 국내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방위산업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정부로부터 탄약제조업체로 지정돼 국내 유일한 종합탄약공장인 안강공장을 건립했고, 1982년에는 육군 조병창까지 인수해 부산 동래공장을 운영했다. 풍산은 5.56㎜ 소구경탄약에서부터 대공포탄, 박격포탄, 함포탄, 전차포탄, 곡사포탄 등 우리 군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탄약을 만들어 납품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 방산 수출 1위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탄약뿐 아니라 기술과 플랜트까지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미주 지역에 경기 및 수렵용 스포츠탄을 PMC라는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고 있다.
‘재계의 선비’ 류진 회장 류진 회장은 1958년 3월 경북 안동에서 고(故)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제학교를 다닌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다트머스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2년 풍산금속공업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은 뒤 부친인 류 창업주가 별세하자 이듬해인 2000년 풍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류 회장은 풍산의 양대 사업인 신동(구리나 구리 합금을 가공하여 구리판이나 구리관, 봉 등으로 만드는 일) 사업과 방위사업부문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편 혼자 출장을 다닐 정도로 소탈하고 실용적 성격을 지녔다. 와인 등에 조예가 깊고 매너가 뛰어나 ‘재계의 선비’라고 불린다.
자타공인 ‘국내외 마당발’ 류진 회장은 국내외 정재계와 스포츠계에서 늘 ‘글로벌 마당발’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특히 '미국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잘 읽고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미국에서 유학을 한 터에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까지 3개 국어를 구사한다. 이런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그는 미국의 정·재계와 인연이 깊다. 특히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류진 회장을 ‘소중한 벗’으로 부르며 직접 그린 초상화를 선물할 정도이고,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류 회장을 아들처럼 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미국공장 준공식에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바버라 부시가 참석한 것을 계기로 부시 행정부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았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미국 공화당 인사들과도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리온 파네타 전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각별한 사이라고 한다. 2018년 조지 허버터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부시의 장례식에도 직접 참석했으며 같은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국장에 파견된 조문사절단에도 포함됐다. 팀 핀첨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총재 등 미국 스포츠계에서도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과 2019년에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페블비치프로암에도 출전할 정도로 열정적 골퍼라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한미(韓美)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류진 회장이 양국의 가교역할을 했다. 류 회장은 2003년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초기에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역할을 했고, 박근혜(朴槿惠) 정부 때인 2013년에는 미국 하원 의원단과 국내 재계의 만남을 주선했다. 2015년에는 류 회장이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골프 라운딩에 초청하기도 했다. 현재는 전경련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미국 인맥이 풍부한 류 회장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공로 등을 인정받아 2005년 금탑산업훈장, 2012년 국민훈장 모란장, 2022년 밴 플리트상을 받았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 주요 약력 ‣ 생년: 1958년생 ‣ 학력: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미국 다트머스대 경영학 석사과정 수료 ‣ 경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서울국제포럼 부회장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한국펄벅재단 이사장 CSIS(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이사회 이사 제19대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 ‣ 수상: 금탑산업훈장 수상(2005, 제32회 상공의 날) 국민훈장 모란장(2012년, 세계 한인의 날) 밴 플리트상 수상(2022)
“전경련 쇄신에 앞장설 인물” 류 회장은 국내 재계 역시 발이 넓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류진의 집무실에 있는 TV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선물받은 것이라고 한다. 류진은 2008년 태국에서 만찬을 열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콜린 파월 전 미국 장관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과도 막역한 사이라고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류 회장이 정재계 인맥을 활용해 전경련 쇄신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현재 전경련에서 탈회 상태인 삼성을 비롯한 LG, SK, 현대자동차그룹 등 4대 그룹의 재가입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2016년 4대 그룹은 전경련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자 탈퇴했다. 다만, 4대 그룹은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회원 자격은 유지해왔다. 5월 전경련에서 내놓은 혁신안에 따라 한국경제연구원과 전경련이 합병하면 4대 그룹은 전경련 회원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경련은 지난 1월 허창수 전 회장(GS건설 대표이사 회장) 이후 바통을 넘겨받을 회장 후보를 물색해왔다. 지난 2011년부터 6회 연속 전경련 회장을 맡은 허 전 회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허 전 회장 외에 10년 이상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한 인사는 고(故) 김용완 경방 회장(1964∼1966년·1969∼1977년)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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