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도 경제인 등 2000여 명을 대상으로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사면 대상에는 경제인들이 다수 포함됐다. 세부적으로는 주요 경제인 12명, 기업 임직원 19명, 중소기업인·소상공인 74명, 정치인 및 전직 고위공직자 7명을 비롯해 그 외 일반 형사범들이 사면 및 감형·복권됐다. 재계에서는 일제히 환영 의사를 전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4일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 발표에 "주요 기업인들이 사면·복권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경제인들을 경영현장에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에 대해 크게 환영한다"며 "경제계는 대내외 환경의 급변으로 저성장 기로에 놓인 한국 경제의 활로를 개척하고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정신으로 신성장동력 창출에 매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이재용·신동빈 회장 등 사면 이후 광폭 행보
리적 관점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주요 경제인의 사면은 기업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등 주요 경제인 4명이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재용 회장은 특별사면으로 복권 후 ‘뉴삼성’ 구축에 속도를 냈다는 평가다. 공식적으로 회장에 취임하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300조 원 투자를 결정했다. 바이오 사업에는 7조 5000억 원을 추가 투자하고, 주요 사업장을 중심으로 제조업 핵심 분야에 총 60조 1000억 원 투자 계획도 밝혔다. 신사업이 멈춰있던 롯데케미칼의 시계는 신동빈 회장 사면 후 다시 돌아갔다. 기업 내부에서는 배터리나 수소 사업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졌지만, 이렇다 할 행동에 나서진 못하는 상황이었다.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이 공격적 투자를 발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신 회장이 복권한 후 지난해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어라고 불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구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2조 7000억 원을 투자하며 본격적으로 배터리 사업에 손을 뻗었다.
동국제강그룹은 올해 11월 동국홀딩스가 공식 출범하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동국홀딩스는 '형제 경영'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장세주 회장은 장세욱 부회장과 함께 지주사 등기임원으로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장 회장이 사면 복권 이후 경영 참여를 공식화한 가운데 궁극적으로 지주사 지분율을 확대해 오너 일가 경영권 강화에 일조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실제 사면된 기업인들은 올림픽 유치 등 국가적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수십조 원 규모의 대형 투자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태광그룹, 멈췄던 투자 시계 다시 도나
올해는 지난해 광복절 특사 명단에서 빠진 이중근 부영그룹 창업주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2011년 횡령·배임 혐의가 불거진 뒤 2012년 태광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19년 징역 3년을 선고받고 2021년 만기 출소했지만, 취업제한 규제에 걸려 출소 뒤에도 그룹 경영에 복귀하지 했다. 태광산업 회장직 공석도 10년을 넘어선 상태다. 이 전 회장은 이번 특별사면으로 취업제한이 풀리게 됐다. 경영 복귀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태광그룹의 현재 경영 상황은 이 전 회장이 물러난 이후 정체에 빠졌다는 평가다. 이 전 회장 사임 직전 해인 2011년 30위권에 있던 태광그룹 재계 순위는 올해 52위다. 투자 및 연구개발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신사업 동력을 발굴하지 못한 탓이다.
태광산업의 정체된 상황은 경쟁사들을 엿보면 알 수 있다. 2018년만 해도 효성첨단소재 매출액은 1조 7675억 원으로 태광산업 매출의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효성첨단소재는 5년 동안 자본적지출(CAPEX)로 8526억 원을 투자했지만, 태광산업은 3756억 원에 그쳤다. 그 결과 지난해 효성첨단소재의 매출은 3조 8000억 원을 상회했고, 태광산업은 2조 7000억 원대로 쪼그러들며 역전된 상황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꾸준히 몸집을 키워 지난해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그러던 중 태광그룹은 지난해 말 10년간 12조 원의 투자를 단행하고 7000여 명의 신규 채용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사면 명단에 들기 위한 노림수라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다만, 추가로 구체적인 투자 로드맵이 공개되고 있지 않은데,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가 가능해지면서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부영그룹, 미뤄왔던 승계작업 시작할까
부영그룹은 이중근 회장의 경영 복귀로 그간 지지부진했던 승계작업을 진척시킬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배구조상 최상단에 위치한 ㈜부영 지분 93.79%를 바탕으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이 회장은 동광주택산업(91.52%)을 포함해 광영토건(42.83%), 남광건설산업(100%), 남양개발(100%), 대화도시가스(100%), 부강주택관리(100%), 한라일보사(49%) 등 사업회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사실상 부영그룹이 이 회장의 개인회사 성격으로 운영된 셈이다. 슬하에 3남(이성훈·이성욱·이성한)·1녀(이서정)를 뒀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지분을 보유한 인물은 없다. 장남인 이성훈 ㈜부영 부사장이 들고 있는 ㈜부영 지분은 2.18%에 그친다. 이 부사장이 8.33%의 지분을 보유한 광영토건에서도 이 회장의 영향력(42.83%)이 절대적이다.
문제는 아직 이 회장의 자녀 중 경영일선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인물을 꼽기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장남은 ㈜부영 부사장을 맡고 있지만 2002년부터 2008년까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부영의 등기이사로 등재된 이후 다시 등기부등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선제적으로 승계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 회장이 최근 2년간 ㈜부영으로부터 3265억 원 상당의 배당금을 수령한 배경에도 승계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
강정석 전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회사 자금 700억 원을 빼돌리고 55억 원을 불법 리베이트로 병원에 제공한 혐의 등으로 2017년 8월 구속 수감됐다. 이후 징역 2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2020년 출소했지만, 5년간 취업제한 규정에 걸린 바 있다. 이번 복권 조치로 회사 등기임원 복귀가 가능해졌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전문 경영인 체제를 확립해 왔다. 제약 업계에선 이례적으로 대표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도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고 주요 자회사의 성장도 이뤘다.
다만, 회장 부재에 따른 한계도 있었다.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신약 개발 사업이나 대규모 시설 투자에 있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내부적으로 유망한 후보물질로 내세웠던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및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DA-1726'의 임상도 늦춰졌다. 강 전 회장이 추진해왔던 인천 송도 '동아쏘시오 미니클러스터' 프로젝트도 지연됐다.
이번 사면으로 강 전 회장 경영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은 출소한 뒤 지주회사 지배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 전 회장은 동아쏘시오홀딩스 주식 29.38%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 있다.
이미 3세 경영인 시대로 넘어간 금호석화그룹, 조언자 역할로 남는 박찬구 명예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은 이미 올해 5월 용퇴를 선언하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3세 경영인 시대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이번 사면 이후에도 기존 역할에 집중하며 무보수 명예회장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박 명예회장의 빈자리는 오너 3세인 아들 박준경 사장이 채웠다. 박 사장은 2007년 금호타이어 차장으로 입사해 2010년 금호석유화학으로 옮긴 후 해외영업팀 부장, 수지해외영업 상무, 수지영업담당(전무), 영업본부장(부사장)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밟았다.
지난해 7월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이사회 일원으로 합류한 데 이어 12월 사장으로 승진하며 기획조정본부를 아우르는 총괄사장을 맡았다. 동생 박주형 부사장도 같은 시기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해 기획·관리본부 총괄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뒤를 이을 오너 경영인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박 명예회장도 자연스럽게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박 명예회장은 지금도 고문역으로 회사에 남아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되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B라텍스 호황기를 지난 금호석유화학은 현재 박 사장의 주도 아래 친환경·이차전지 소재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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