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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금리산정 투명화 필요성

고무줄 가산금리, 산정 방식은 ‘깜깜이’

현광순 | 기사입력 2023/10/12 [15:01]

은행 금리산정 투명화 필요성

고무줄 가산금리, 산정 방식은 ‘깜깜이’

현광순 | 입력 : 2023/10/12 [15:01]

 

  © 경제인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 올해 초 은행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이런 주문에 은행은 공공의 적이 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많은 국민이 힘든 시기에 역대급 수익을 거둬들인 은행이 이를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했다는 것이 발언의 배경이다.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금융 서비스는 민간에서 공급하지만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의 특허로 과점 제체가 유지된다며 다시 한번 은행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금융소비자의 금리 부담을 낮추기 위한 은행의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 축소를 꼽았다.

 

여기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권의 행태를 약탈적 금융이라고 명명하며 윤 대통령의 말을 이어받았다. 은행들이 금융 취약층의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지점 수를 줄이는 등 비용을 절감하고, 금리 상승기에 소비자들이 큰 금리 부담을 겪는 와중에도 수십조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강도 높은 비판은 은행이 힘든 국민으로부터 높은 금리를 무기로 약탈적으로 수익을 올린 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은행권, ‘금리산정체계 공개실제 효과 확신 없어

하루아침에 국민의 적이 된 은행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은행연합회는 예대마진 비판 이슈를 분석, 대응방향을 세우며 보다 적극적인 프레임 대응에 나섰다.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상생 금융 시행 이후 예대금리차가 하향세에 접어들며 정량적 돈잔치비판여론은 감소했지만, 부정 이미지가 고착됐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지난해 기준 5대 은행 평균신규 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 1.2%포인트 이상이 될경우 언론 주목도가 증가하고, 1.5%포인트 이상이면 비판 보도가 확산된다고 구체적이 수치까지 분석해 놨다. 대응 방향으로 언론 스킨십 강화 등 선제적 프레임 관리도 제시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아예 새로운 프레임으로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이날 은행연합회는 은행 산업 역할과 수익성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의 수익이 해외 주요국에 비해 적은 편이며, 사회적 기여를 위해서 어느 정도 수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한 수익을 지적하는 정부에 늦었지만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여담이지만, 이날은 2분기 은행 수익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보고서에 대한 브리핑 이후 은행연합회 관계자에게 왜 하필 지금인지, 정부에 대한 반박이 목적인지 물었을 땐 수차례 수정을 거쳐 그런 기조를 많이 뺐는데도 의도가 느껴지냐며 시인하기도 했다.

 

양측이 제시한 프레임대로 보면 모두 일리가 있다. 은행권은 전 세계적인 긴축 통화정책 기조 아래에서 이자 수익이 크게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9월 말 누계기준 국내 4대 은행(KB, 신한, 하나, 우리)의 이자 순수익은 약 214500억 원으로 2년 전인 20209월 말 누계 기준(16조 원)에 비해 약 34% 증가했다.

 

코로나19로 국민이 고통받는 동안 실제로 은행의 이자 순수익이 크게 성장한 것으로 정부의 프레임에 힘을 싣는다. 반면,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 해외은행에 비해 크게 못 미친다는 은행권의 반박도 사실이다. 국내 은행 산업의 2013~2022년 평균 ROE(당기순이익/자기자본자기자본이익률)5.2로 미국(10.2)과 캐나다(16.8), 싱가포르(10.8)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국내 은행권이 해외 다른 주요국과 비교하면 그렇게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어느 한쪽도 틀린 말이 없는 프레임 전쟁은 지금도 공회전 중이다.

 

예금과 대출이자 설정 등 수익 구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

문제해결의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못한 채 헛도는 사이 금융위원회는 공회전을 가속했다.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칼을 빼든 금융위는 4개월 동안 매주 회의를 열어 은행 간 경쟁 시스템 마련에 몰두했다.

 

문제는 15회에 걸친 회의 끝에 내놓은 종합 개선안이 용두사미에 그쳤다는 점이다. TF 회의 초기, 카드증권보험사의 지급결제를 허용, 세분화된 은행업 인가를 의미하는 스몰라이센스 도입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지만, 모두 유보되거나 형식적인 언급에 그쳤다. 지방은행이었던 대구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는 등 기존금융사의 은행전환으로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기존 시중은행에 비해 규모에서 밀려 실제 경쟁자가 될 수 있냐는 의문이 남는다.

 

금융위는 언제든지 경쟁자가 등장할 수 있다는 잠재적 경쟁자론을 들먹였지만 설득력이 부족해 핑계로 들릴 뿐이다. 결국 금융위는 대통령의 지시에 거창하게 뽑아 든 칼로 무만 썰은 셈이다.

근본적 문제해결과 거리가 먼 프레임 전쟁을 멈출 때다. 프레임은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 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는 핵심 요소를 빠뜨려 지금처럼 논의의 공회전을 유발하기도 한다.

 

지금의 프레임도 은행이 과점체제에 기반한 적이냐 아니냐로 대립할 뿐 이자 수익’, 더 근본적으로는 금리산정체계에 대한 논의는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은행이 예금과 대출이자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수익 구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 가감 조정금리를 더해 결정된다.

 

기준금리는 코픽스나 은행채 금리를 기준으로 정해지기에 비교적 투명하다. 하지만 원가, 리스크 관리비용, 법적비용 등으로 구성된 가산금리와 목표 이익율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문의했을 때 돌아오는 답은 4대 은행이 한결같다. “영업기밀이라 알려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이런 불투명성은 은행 금리산정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도 남긴다.

 

리스크 관리비용 중 자본비용은 예상치 못한 손실에 대비해 은행이 보유 해야 하는 자본의 기회비용이다. 쉽게 말해, 은행이 충당금이나 경기완충자본 등 손실에 대비해 쌓아놓은 돈을 굴리지 못해 거두지 못한 수익을 비용으로 계산해 대출금리에 포함 시키는 것이다. 마땅히 은행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지만, 금리산정 체계상 금융소비자가 영업기밀에 따라 얼마인지도 모른 채 이를 부담하고 있다.

 

그래도 금융위가 뽑아 든 칼이 허공을 가르지는 않았다. 은행들의 예대금리차 공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문제의 근원에 근접하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프레임의 틀에 갇혀 금리산정 방식 공개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예대금리 차이를 좁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접근한 것이다. 국회의 문제 인식과 접근도 긍정적인 부분 중 하나다.

 

21대 국회에는 금리산정체계 개선을 위해 금융위가 금리산정 개선 권고를 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고금리가 지속돼 차주(借主)들의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의 합리적인 금리산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수익의 많고 적음으로 규정하는 이냐 아니냐라는 프레임은 발전적이지 못함이 드러났다. 그보단 그 수익이 어떻게 나왔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금융소비자 보호와 동시에 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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